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6호 전차 티거 (문단 편집) === [[제2차 세계 대전]]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tg2.jpg|width=100%]]}}} || || '''요하네스 뵐터 탑승 티거'''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flamesofwar.com/Carius3.jpg|width=100%]]}}} || || '''오토 카리우스 탑승차량 "217호차"'''[* 포탑 오른쪽(전차장 감시탑)이 [[오토 카리우스]]다. 1번 전륜의 외측 한장이 빠져 있는데 이는 기동륜과 로드휠 사이에 이물질이 끼어 기동의 방해가 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 뒤에 완충 고무가 빠진 로드휠도 보기 드문 모습이다.] || 티거는 거의 대부분이 집단군, 군단, 전투단 직할 독립 중전차대대로 편성되었으며 거의 항상, 가장 격렬한 전장으로의 투입을 강요받았다. 티거는 무리한 중량과 상기된 단점들 때문에 별도의 정비팀, 보급팀, 수송팀이 붙어야 했으며 보급순위도 최우선적이었다. 각 중전차 대대는 4개 차량이 1개 소대로 편성되며 3개 소대에 중대장 직속으로 2개 차량이 모여 14대가 1개 중대, 여기에 3개중대+대대장직속 차량3대로 45대가 완편 규모가 된다. 정비팀을 위해 별도의 중전차 시제차량들이 개조 후 지급되기도 했다. 더딘 생산속도 때문에 45대를 완편하고 있던 상황은 흔치 않았다. 동시에 최대로 배치된 티거의 수는 1944년 7월 기준로 671대에 불과했다.그러나 연합군의 파상공세와 함께 단 두달동안 300대 이상을 손실하면서 1944년 말에는 중전차 전력의 핵심은 [[티거 2]] 중전차로 변경된다. 티거를 운용했던 각 중전차대대의 목록과 투입된 전장은 [[중전차대대]] 문서 참조. 티거는 중요 장비였던 탓에 한대 한대의 손실이 대부분 기록으로 정확하게 남겨졌고 각 중전차 대대의 전투일지는 영어, 독일어, 일본어 등으로 출판되어 있다. 상세한 손실과 충원 요약은 [[http://www.alanhamby.com/unithist.shtml]|링크]]에 정리되어 있다. |||||||| {{{#white '''각 중전차 대대의 kda 기록'''}}} || || {{{#white '''Unit'''}}} || {{{#white '''Losses'''}}} || {{{#white '''Kills'''}}} || {{{#white '''Kill/Loss Ratio'''}}} || || schwere Panzer-Abteilung 501 (424) || 120 || 450 || 3.75 || || schwere Panzer-Abteilung 502[* [[오토 카리우스]]와 [[요하네스 뵐터]] 등이 복무한 대대이다.] (511) || 107 || 1,400 || 13.08 || || schwere Panzer-Abteilung 503 (Feldherrnhalle)[* [[쿠르트 크니스펠]]이 복무한 대대이다.] || 252 || 1,700 || 6.75 || || schwere Panzer-Abteilung 504 || 109 || 250 || 2.29 || || schwere Panzer-Abteilung 505 || 126 || 900 || 7.14 || || schwere Panzer-Abteilung 506 || 179 || 400 || 2.23 || || schwere Panzer-Abteilung 507 || 104 || 600 || 5.77 || || schwere Panzer-Abteilung 508[* 티거를 운용한 모든 대대를 통틀어서 '''kda가 제일 낮다.''' 실제로도 실전에서 비전투손실로 대량의 전차들을 날려먹거나 말도안되는 졸전만을 반복한 부대였는데 자세한 내용은 [[중전차대대]] 문서에서 서술한다.] || 78 || 100 || 1.28 || || schwere Panzer-Abteilung 509 || 120 || 500 || 4.17 || || schwere Panzer-Abteilung 510 || 65 || 200 || 3.08 || || 13./Panzer-Regiment Grossdeutschland || 6 || 100 || 16.67 || || Ⅲ./Panzer-Regiment Grossdeutschland || 98 || 500 || 5.10 || || 13./SS-Panzerregiment 1 || 42 || 400 || 9.52 || || 8./SS-Panzerregiment 2 || 31 || 250 || 8.06 || || 9./SS-Panzerregiment 3 || 56 || 500 || 8.93 || || schwere SS-Panzer-Abteilung 101 (501)[* [[미하일 비트만]]이 복무한 대대이다.] || 107 || 500 || 4.67 || || schwere SS-Panzer-Abteilung 102 (502) || 76 || 600 || 7.89 || || schwere SS-Panzer-Abteilung 103 (503) || 39 || 500 || 12.82 || || '''Total''' || '''1,715''' || '''9,850''' || '''5.74''' || 이 표에서 제시하고 있는 티거의 손실(Losses)은 연합군 전차 뿐만 아니라 항공기 폭격, 야포 등에 의한 다른 전투손실을 비롯해 유기, 승무원에 의한 자폭, 부품수급을 위한 해체[* 비교적 상태가 나쁜 차량을 해체해서 부품으로 유용한 것이다. 대대에 따라서는 차량의 20%까지도 이런 식으로 소모되었다.]까지 포함한 티거 총손실이다. 전차 대 전차의 순수한 교환비는 앞서 말했듯 1:10을 넘는다.[* 티거의 교환비 도표의 1차 출처는 Tigers in Combat, Vol I&II, Wolfgang Schneider, 2차 출처는 [[http://www.alanhamby.com/losses.shtml|Tiger I infomation center이다.]]] 그러나 티거는 전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많은 단점을 감수했고 그 결과로 일어난 높은 비전투 손실을 굳이 빼고 이야기 할 이유가 없다는 비판이 있으니 참고하도록 하자. 티거는 주로 공세의 선봉에서서 적의 화력을 받아내며 방어선을 뭉개는 임무를 담당했으며 소련의 공세에 시달리던 시점부터는 기동방어의 핵심전력으로 활용되었다. 전선을 뚫고 밀려 들어온 소련의 전차군단이 통신이나 보급 한계선에 도달했을 때 티거 전투단들이 이들을 섬멸했다. 대전 후반에는 강력한 주포와 넉넉한 휴행탄수의 장점을 활용한 방어전의 화신이 되어 영국과 소련군은 전선의 주요 교두보마다 티거의 매복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유명한 전과들은 다음과 같다. >1943년 2월 11일, 로스토프 전선에서 503 중전차대대의 사벨 소위가 탄 티거는 76.2mm 포탄 11발, 45~57mm [[대전차포]]탄 14발, 14.5mm 대전차총탄 227발을 맞았지만 단 한발의 탄도 티거를 관통하지 못하였고, 전륜과 차축 여러개가 파손되고 토션바 2개가 기능을 상실하고 대전차지뢰 3개를 밟았지만 적군을 유린한 후 60km 떨어진 아군 부대로 야지를 자력주행하여 돌아갔다. >1944년 7월 [[미하엘 비트만]]의 중대는 빌레르 보카쥬에서 27대의 영국군 전차를 격파했고 영국군의 캉 조기 점령을 저지시켰다.[* 자세한 것은 [[미하엘 비트만]] 문서 참조.] >1944년 동부전선에서 [[오토 카리우스]]와 [[알베르트 케르셔]]는 말리나파 전투를 벌여 단 2대의 티거로 소련군 전차여단을 한대의 생존차량도 남기지 않고 전멸시켰다.[* 자세한 것은 [[오토 카리우스]] 문서 참조.] 이 밖에도 티거가 찍은 전차 무쌍의 기록은 셀 수 없이 많다. 더구나 생존성 역시 상당해서 전투불능이 되어도 일단 회수만 된다면 정비 후 재투입이 가능한 경우도 허다했다.[* 이건 티거만의 특징은 아니고 대부분의 전차가 회수만 되면 정비 후 재투입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오토 카리우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만일 작동 불능 및 회수 불가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되면 포탑을 간단하게 박살낼 수 있도록 포탑 주변의 수납 공간에 폭발물들을 설치해놨다고 밝혔다.[* 오토 카리우스는 어차피 자폭할 상황이면 X된 것이고, 자폭할 필요가 없다면 어떻게든 상황을 극복할 만한 것이기 때문에 자폭용 폭탄 대신 [[슈냅스]]라는 '''독일 토산주'''를 넣어두었다고 그의 회고록 《진흙속의 호랑이》에서 밝혔다. 자폭장비보다는 술이 동료들에게 훨씬 더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회수작전은 주로 야간에 이뤄졌으며 실패할 경우 회수에 나선 티거가 주포로 격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기밀 유지를 위해 노력했어도 티거가 전장에 투입된지 얼마 안 돼서 소련군들 사이에선 꽤 정밀한 티거 그림이 돌아다녔다고 한다. 가격 대 성능비로 보자면 티거는 대당 30만 라이히스마르크로 4호 전차(12만 라이히스마르크)에 비하면 대략 세 배, 판터(15만 라이히스마르크)에 비해 2배에 조금 못 미치는 가격이다. 그러나 티거가 1943년 한 해동안 때려잡은 적 전차 및 자주포는 약 5천여 대 같은 기간 소련군이 잃은 전차 및 자주포는 총 2만 2천 대로 티거가 독일군 전차에서 차지하는 비율(5% 이하)을 생각하면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대전차전에선 가격 대비 성능 또한 훌륭했다고 볼 수 있다. 유의할 것은 이 티거의 가격은 평균가란 점이다. 티거 극초기형은 80만 라이히스마르크에 달했는데 소량생산[* 티거 초기형은 1942년 8월부터 1943년 6월까지 347대가 생산, 중기형은 1943년 7월~1944년 1월 동안 478대 생산, 후기형은 1944년 2월~1944년 8월 동안 530대 생산했다.]과 노동자 숙련도 부족 등이 원인이었다. 이후 생산량이 늘고 노동자들이 숙련공이 될 때 생산된 중/후기형까지 합쳐지면서 평균가가 하락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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